아빠가 되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진 않았지만 초음파를 통해 아기집을 보았고 인공수정 1차 시험관 1차에 나는 아빠가 되었다. 아빠가 되기 위한 일부 과정을 겪어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하면서 난임 시술 과정을 복기해 보니 남편이 해줘야 하는 역할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경험한 과정과 당시의 감정들을 적고 미처 몰랐던 상황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좋은 남편과 좋은 아빠가 되는 것에 관심이 있거나, 임신이 안 되는 것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남편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글을 작성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이 미래가 불확실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를 땐 경험해 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하기 마련이다. 상황에 따라, 단순한 답을 원하는 경우가 있고 심리적인 공감대 형성과 과정의 느낌이 궁금할 때가 있다. 난임이라는 주제는 어른들 세계에 존재하는 감정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글을 통해 얻어가는 것이 많으면 좋겠다.
아냐, 우린 문제없어.
결혼한지 2년이 지나고 애기가 생기지 않아 아내가 많이 불안해했다. 아내는 나에게 난임병원을 제안했다. 지금의 아내와 나의 나이는 기껏해야 서른 초반. 나는 우린 문제없다며 아내를 다독이며 아이는 너와 나의 사랑의 결실이지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가 생기면 못하는 재미들에 집중하자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매달 가임기를 맞춰 지속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는 우리르 찾아와 주지 않았고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아내가 아이를 워낙 좋아하고 빨린 갖고 싶은 소망이 있어 조급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남편으로서 아내의 그런 조급함도 품어주고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주는게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녀가 있는 주변 지인들에게 아이가 언제 생겼는지 묻기 시작했다.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너는 아직 어리잖아. 괜찮아.
서른 초반이라는 나이는 누구에게는 어리고 누구에게는 많은 나이다. 난임의 세계에서는 어린 쪽에 속하는 건 맞다. 인터넷을 통해 여러 정보를 수집해 보면 여성의 신체는 30대 중반부터 난소의 수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난자의 질도 떨어지기 때문에 임신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어리지 않은가? 작년까지만 해도 20대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다시 시간은 흘러갔다.
내가 고자라고?
시간이 흘러가니 나의 평정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문제가 없는 게 맞는가? 다시 한번 재고하게 되었고, 예전에 아내가 했던 말들을 되짚어 보았다. 동네병원에서 간단한 정액 검사만 받아봤고 제대로 된 정액 검사 결과지를 본 적이 없기에 내가 문제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난임병원에서 검사를 받기로 했다. 브랜드 난임 병원은 크게 2개였다. 마리아, 차병원. 나는 집에서 마리아 병원이 더 가까워서 마리아로 정했고 정액검사 결과는 1주일 정도 후에 알려줬던 거 같다.
다 정상이시고요~ 기형정자가 1% 세요
병원에서 전화로 결과를 알려준다.
"정액 양 ^&%$&^$%#~ 정상이시구요~ 기형정자가 1% 로 나오셨어요~ 다른 게 모두 정상이셔서 기형정자가 1%인 거는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일반 병원에 비해 검사 기준이 엄격하기도 하고 100마리 정도만 수기로 확인하는 거라 표본오차가 좀 있을 수 있으세요~"
엥? 이게 무슨 소리지? 기형정자 1%?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단어들을 들었다. 슈퍼 이공계인 나는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정보가 필요했다. 기형정자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했다. 기형정자라는 단어만 들어서는 기형정자가 1%면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기형정자 1%가 "기형인" 정자 1% 라고 인식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100마리의 정자 중 임신에 적합한, 유리한, 정상적으로 생긴 정자가 1마리가 있다는 얘기였다. 정자는 크게 머리와 꼬리가 있다. 그렇게 모양을 갖추게 되고 모양이 이쁘지 않은 정자는 머리 모양이 찌그러졌다거나 꼬리가 짧다거나 등등 모양이 이상하다.
기형정자 1% 라고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이해가 됐다. 정액의 양 자체는 평균보다 많았기 때문에 100마리 중 1마리만 정상이라고 해도 100마리가 아닌 수억 마리 중에 1%면 정자가 많기 때문이다. 돈으로 비유하면 이자가 1%인데, 100만 원의 1%와 100억의 1%는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나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정자는 난자와 다르게 다시 생성되기 때문에 관리를 잘하면 좋아질 수 있다는 논리가 맞았다.
그렇게 3개월간 운동과 식단을 하면서 관리에 들어갔다. 다시 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그대로였다. 반면 아내는 자궁 모양도 나팔관이 막혀있는 것도 병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 내가 고자였다.
복잡한 머리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기형정자 수치가 불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액 양과 활동성이 괜찮기 때문에 임신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선택해야 했다. 자연임신을 시도할 것인지, 난임병원을 다닐 것인지. 나는 아내와 상의했고 1분이라도 젊을 때 아이를 갖고 싶다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여 난임병원을 다니기로 결정했다.
난임병원을 다니기로 결정한 후, 이 모든 상황을 스스로 받아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1. 나는 2세를 원하는가?
- YES, 어릴 때부터 자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나 때문에 아내가 고생해야 하는가?
- NO, 마음은 YES를 말하지만 둘 중 누구의 문제라고 논할 주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부부가 서로 동의 하에 결단을 내린 결정임으로 자책할 시간에 어떤 걸 준비하고 챙겨야 할지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3. 난임병원을 다니면 임신 확률은 확실한가?
- YES, 난임병원을 통해 난임의 원인을 찾은 사례도 있고 임신 성공률이 자연임신 < 인공수정 < 시험관 순서로 높다는 연구 결과 및 지인을 통해 확인했으므로 아이를 갖는 시간 단축과 확실히 하고 싶다면 난임 병원을 다니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큰 생각들은 이렇게 정리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난임병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가자마자 내가 간과하고 있던 것이 드러났다.
난임 시술 과정 자체가 고통
난임 병원은 모든 게 여성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남자들은 가서 할 게 없다. 아내를 돌봐주고 그런 것들 말고 난임병원 자체에서 남자들이 진료라고 받는 건 정액 검사 하나뿐이고, 시술에 필요한 정자 제공뿐이었다.
반면, 여성들에게 난임 시술 과정이란 매우 번거롭고 고통스러운 과정의 연속이었다. 남편으로서 옆에서 지켜본 고통은 다음과 같다.
- 일상을 약 스케줄에 맞춰야 한다.
- 셀프로 아픈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아야 한다.
- 난소과자극 증후군 후유증으로 배에 물이 찬다.
- 임신을 해도 위 3가지 항목이 지속된다.
추가로, 병원을 자주 가야 한다. 직장을 다니는 중이라면 아침 일찍 새벽 여섯 시부터 줄을 서야 7시 30분부터 진료를 1순위 또는 2순위 정도로 진료, 처방을 받으면 8시쯤 된다. 8시부터 병원 위치부터 출근을 해야 한다. 무려, 주 2~3회 정도를 이렇게 생활해야 한다. 직장인이라면 알 것이다. 개인 가정사를 주변에 오픈하는 일, 양해를 구하는 일, 출근해서도 눈치를 보게 되는 그런 상황을 2~3달은 겪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아내를 따라 난임 병원에 데려다주고 직장까지 다시 데려다 주기를 수 차례 반복해 봤다. 새벽같이 줄 서있는 수많은 여성분들도 봤고 남편과 같이 오는 사람보다는 혼자 온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을 텐데도 참 대단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여성이 본다면 남편에게 공유해서 난임 시술 과정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현실 감각을 느끼게 해 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남자는 시술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직접 이 과정을 옆에서 겪어본 나조차도 아내가 잠시 편안한 얼굴을 보이면 괜찮다는 착각에 빠지기 쉬웠다. 그런데 이런 과정들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한번 해볼까?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을 갖고 시도하는 남자라면 꼭 알면 좋겠다.
인공수정 1차가 로또라고?
자연임신 성공률 보다 인공수정이 15% 정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여기서 착각을 했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치열한 경쟁과 어려운 성공률을 뚫어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손실회피 경향으로 안될 확률이 훨씬 높음에도 10명 중에 1명 아니면 2명까지에 포함되면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러다 아내에게 새로운 정보를 듣게 됐다.
너무 기대하지 마... 인공수정 1차는 로또래..
인공수정 1차가 로또라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만약 로또 당첨률이 15%라면 지금 당장 로또를 사러 가겠다. 인공수정이 임신 성공률이 로또 확률과 비슷하다면 15%는 택도 없는 소리 아닌가. 그럼 2차는 로또가 아니고 15% 확률이 맞는 건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래서 인공수정 1차가 로또라는 주장에 대한 논리를 알아봤다. 논리는 간단했다. 인공수정을 위해 몸에 약물을 투여해 여성의 자궁 상태를 새로운 임신 환경으로 만들어주는데, 정자와 난자가 그 환경에 바로 적응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정신건강과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는다면 무조건 된다는 생각에만 집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가정에 아이가 생기는 일이지. 안될 확률을 걱정해서 미리 걱정하는 것은 안 좋은 소식들만 더 잘 들리게 한다. 이때, 남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내가 불안해해도 약간의 공감은 해줄 수 있으나 안정감을 최우선으로 해주길 바란다.
나와라 매직아이!
인공수정 1차는 성공 반, 실패 반이었다. 처음으로 희미한 매직아이를 보았다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우리는 3가지 상황에 빠지게 된다. 내 눈에는 보이는데....
- 화유인가? (화학적 유산)
- 임신인가?
- 테스트기가 불량인가?
3가지 모두 가능성이 있다.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내가 정리해 주도록 하겠다. 우선, 희미하게라도 보이면 임신 가능성을 열어두고 몸 조심 해야 한다. 둘째로 생리 날짜로부터 14일 전까지는 아무도 믿지 말고 누구의 말도 듣지 마라. 이게 힘들겠지만 그래야 마음고생을 안 한다. 셋째로 무조건 병원에서 피검사를 받아야 한다. 테스트기는 우리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계속 궁금해지면서 걱정도 생길 것이다. 확실한 건 무조건 피검사다.
시험관은 난자 채취가 힘들다.
시험관 시술은 난자 채취가 힘들다. 이론적인 과정은 "난포 키우기" → "난자 채취" 끝. 이론은 간단하지만 난포를 키우기 위해서는 배에 많은 주사를 맞아야 하고 지속적으로 약도 먹고 생식기를 통해 몸속에 약도 넣어야 한다. 2주 정도의 기간을 거치는데 갑자기 몸에 호르몬 변화를 강제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배가 뻐근하거나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설사를 한다거나 다양하게 몸이 아파온다. 이 또한 온전히 아내 혼자서 감당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2주 정도 거쳐서 난포를 키우게 된다. 난포를 키우는 상황에서 여자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난자 수가 정해져 있는데, 난자 수가 빠르게 줄어드는 거 아닌가요?
아니다. 어차피 나올 난포들이다. 여러 개의 난포들이 자라나서 그중에 1~2개만 나팔관을 통해 배란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난포들을 키운다고 해서 난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난포를 키우고 나서는 난자를 채취를 하는데 시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병원에 1~2일 간격으로 방문해서 채취 날짜를 잡는다. 채취할 때는 수면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동의서를 작성하면서 냉동배아에 대한 서류 작성도 진행한다. 난자 채취하는 날에 남자도 정자 채취를 해서 바로 배아를 만든다. 만든 배아를 3일~5일 정도 키운 다음에 배아의 등급을 매겨 좋은 배아를 이식하게 된다. 이식 후에도 물론 주사와 약은 계속 먹고 넣어야 한다.
난자 채취 후에는 안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경험상 연차가 10개 정도는 있어야 될 거 같다. 난자 채취를 하게 되면 난소과자극 증후군이라는 부작용이 있는데, 배가 아프고 배에 물이 차서 장기들이 눌려 복통, 설사, 호흡곤란을 초래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온음료(포카리)를 마실 것을 권고하는데, 배에 물이 차는 원리 때문이다. 난자 채취로 인해 난소들이 붓고 혈관들이 흐믈흐믈해져서 수분 흡수를 못하고 빠져나가기 때문에 탈수 증상이 온다. 그래서 이온음료를 통해 수분을 보충해 주면서 소변양을 늘려 복수 차는 것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 아내는 포카리를 거의 한 달 반째 마시고 있는데 하루에 1.5L 정도를 섭취해야 한다. 포카리만 30만 원 정도 구매했다.
인공수정 1차, 시험관 1차 아빠가 되었다.
이런 과정 끝에 피검사를 통해 임신을 확인하였고 아빠가 되었다. 이 글은 아이가 5주 차 일 때 작성했는데 공 들여서 내용을 쓰다 보니 벌써 7주 차가 되었다. 이제는 아이의 심장도 생겼다. 여기에 적은 글들 외에도 남겨두고 싶은 내용이 많은데 그렇게 했다간 글 완성을 못 시킬 거 같아 이 정도로만 작성하고자 한다. 난임 시술에 대한 실질적인 비용은 포카리, 병원비, 시술 후 음식 값을 하면 200~240만 원 정도 잡아야 될 거 같다.
나에게 따뜻한 봄이 찾아왔듯, 다른 분들에게도 좋은 날이 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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